무령왕릉 발굴 현장의 진짜 가치는 금관이 아니다

백제 무령왕릉하면 어김없이 금관과 목걸이 사진이 돌아다닌다. 요즘 것들은 화려한 유물 사진만 보면 입을 벌리는데, 그건 이 무덤이 세상에 튀어나온 진짜 이유가 아니다. 1971년 7월 발굴 당시 이미 도굴당해 빈 껍데기만 남은 줄 알았던 무덤이 우연히 완전형태로 남아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다. 도굴꾼들이 지나치지 않은 묘제, 그게 백제의 기술력이다.

남궁 기지线을 따라 들어가면 벽돌무덤(전축분)의 단면이 보인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건 벽돌 쌓는 방식이다. 연꽃 무늬를 새긴 벽돌을 아치형으로 쌓아 올려 하중을 분산시키는 구조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수준의 토목 기술을 요구한다. 묘실 내부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배치도,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치밀하다. 장식품에 눈이 먹다 보면 이 구조적 치밀함은 놓치기 십상이다.

출토 유물을 둘러보면 왜 이곳이 동아시아 고고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지 답이 나온다. 왕과 왕비의 지석은 무덤의 주인과 축조 시기를 명확히 밝히는 확실한 기록이다. 기년 명문(紀年銘文)이 달린 왕릉 지석이 출토된 사례는 손에 꼽는다. 서기 525년이라는 절대 연대가 적힌 돌덩이 하나가 수많은 삼국시대 유적의 편년을 기준점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잡다한 해석이 들어갈 틈이 없다.

기행을 나섰다면 무덤 내부가 아니라 그 주변의 석수(石獸)부터 봐라. 길을 안내하는 석짐승들의 형태는 시대가 지나며 풍화로 인해 마모되었지만, 원형은 분명하다. 이 돌짐승들은 무덤의 경계를 넘어오려는 잡귀를 막는 기능과 동시에 왕의 위엄을 과시하는 장치다. 현실적인 방벽이자 정치적 상징이라는 이중성을 그 조악한 돌덩어리가 다 담고 있다. 화려한 장신구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백제의 뼈대, 그게 바로 이 무령왕릉 기행이 던지는 팩트다.

ishikyujin